6개월 전, 그들은 LBD 탄환 발포와 곤봉세례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요즘, 그들 중 일부는 생계 문제로 인해 노란 조끼 운동을 그만두거나 포기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다. 때로는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이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경찰 폭력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복기해보자.


1.

 “Castaner(카스타너 내무장관), 저는 여기 있지만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습니다.” Lilian의 어머니 Flaure Diesse는 열변을 토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내무장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위대가 아니었던 그의 아들은 지난 1월 12일 스포츠 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란 조끼 9차 행동을 지나쳤고 턱에 피격을 당했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린 내사부(IGPN)와 Christophe Castaner(크리스토퍼 카스타너)는 심지어 ‘경찰 폭력’이라는 용어조차 거부한다.


<5월말, Lilian Lepage는 일주일간 아버지 댁으로 떠났다. 그 뒤, Flaure Diesse는 아프기 시작했다. 소년의 어머니를 지치게 하는 6개월간의 ‘여파’.>


"Lilian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합니다"


 전직 영업 컨설턴트 Flaure Diesse는 지난 6개월 동안 노력해왔다. 그녀는 혼자서 16살 아들을 위해 외과의사, 치과의사, 기자, 변호사, 고등학교 당국과 약속을 잡고 이를 조율해야했다. 아들의 부상은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6월 초, 외과의사는 Lilian의 턱에 박았던 철심을 제거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Flaure Diesse는 이를 알고 있다. :


 “아들이 이전보다 더욱 폐쇄적으로 변했습니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는 약점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심적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 내년에 그는 기숙학교에 갈 계획입니다. 저는 그가 이 도시를 떠나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Brittany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하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저는 지쳐버렸습니다"


 Flaure Diesse는 이 길고 긴 지독한 시련에 지쳤다. 5월말, Lilian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 간 집을 떠났다. 그 뒤, 그의 어머니는 아프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노력의 여파였다. “저는 지쳐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운 좋게도 제 친구가 저를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설명한다. 국가의 지원 부족에 분노한 <la Strasbourgeoise>는 그녀를 위한 몇 가지 지원 방안을 제안했고, 그녀는 이를 감사히 여긴다. :


 "노란 조끼들이 제 아들에게 비디오 게임(편집자 주 : Red Dead Redemption II)을 제공해주셨고, 홈스쿨링 비용을 환급해주신 Idéo Ostwald 협회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


 이 인터뷰 이후, 채식주의자 단체 Vegan Bastards Krew가 그녀의 가족을 위한 온라인 모금과 후원의 밤을 조직했다. 아들 Lilian의 부상으로 인해, Flaure Diesse는 그녀가 준비하고 있던 시험을 연기해야했다. 그녀는 ‘비혼모(싱글맘)’를 위한 사회 복지사가 되고 싶다. 연초부터 시작된 어려운 상황에, 그녀는 더욱 굳세게 마음을 다잡는다.


2.

"마치 경찰들이 저를 다시 폭행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태양이 밝게 비추던 5월 14일 화요일 Brumath. 지칠 줄 모르는 Marlène Lutz는 로터리 옆에서 노란 조끼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지난 1월 열렸던 그 유명한 9차 행동에서, 63세 유부인(역자 주 : ‘과부’의 대체어) Marlène Lutz는 곤봉에 뒤통수를 폭행당했다. 그 당시 그녀는 Maire-Kuss 다리에서의 충돌을 피해 ‘11월 22일’ 거리에 있었다. 전직 간호조무사 Marlène Lutz를 위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


 “현재까지도, 저는 여전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더러운 경찰의 잔혹함과 공존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입을 열고 시위를 계속하는 한, 모든 이들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시위가 정당한 것임에도.”


 요즘, Marlène Lutz는 ‘곤봉에 폭행당한 사람, 최루 가스에 고통 받는 사람, 실명을 당한 사람’들을 보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경찰 폭력이 담긴 모든 장면은 그녀에게 지난 1월 12일에 느꼈던 고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


 “매순간, 경찰들이 누군가를 곤봉으로 폭행하는 모습을 볼 때, 마치 경찰들이 저를 다시 폭행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저 역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왼쪽, Marlene은 노란 조끼 지역 활동가 Carolane Ortlieb의 말을 듣고 있다.>


3.

"저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Pascal Kaiser는 아주 조용하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참여자는 증언하기를 꺼려한다. 1월 5일 파리 시위에서 발목에 부상을 당한 자동차 사업가 Pascal Kaiser는 몇 달간의 수입을 잃게 되었고, 쉽게 걸을 수도 없었다. 또한 그는 이혼을 했다.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그가 양해를 구하며 말했다. “저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지금은 답변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제 본모습이 아닙니다.”


<사진 왼쪽, 2019년 5월 14일 Pascal Kaiser의 모습. 그는 우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3주 뒤, 그는 Montpellier 시위에서 또 다시 부상을 당했다.>


 한 달 뒤, Pascal은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는 다시 절룩거린다. 6월 8일, Pascal은 Montpellier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저는 곤봉으로 3차례 허벅지를 폭행당했습니다. 저는 송아지마냥 비명을 질렀습니다. 당시에 저는 경찰이 제 다리에 발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날, 그의 뒤편에서 수류탄이 공중 폭발을 했다. 노란 조끼들은 그 현장에서 피해를 느끼진 못했다. :


 “수류탄이 폭발할 때, 여러분은 도망칩니다. 이후, 제가 봤을 때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2도 화상, 편집자 주)”


<6월 8일 Montpellier 시위에서, Pascal은 수류탄 폭발로 인해 2도 화상을 입었다.>


"경찰 폭력이 제 삶을 망가뜨렸습니다"


 Marlene과 마찬가지로, 요즘 Pascal은 경찰 폭력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제가 시위에 갈때마다, 항상 무슨 일이 제게 일어나는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평화롭다고 되뇌지만, 그 일은 제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2월 23일 Strasbourg에서는 심지어 어떤 공예 장인이 목발을 짚고 서있었는데, 경찰은 그를 폭행했습니다.(여기에서 42분의 장면을 보세요. https://www.facebook.com/caro.ortlieb/videos/1453402798128711) 그러나 Pascal은 "경찰 폭력이 제 삶을 망가뜨렸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이 투쟁을 이끌고 있다.


4.

포기한 사람들, 생계 위협에 내몰린 사람들


 Mulhouse에 사는 Alexandra Di Nanno에게로 가보자.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그녀 역시 Strasbourg 9차 행동에서 두개골을 강타 당했다. 공장에서 움직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Mulhouse 본사에 가거나, 시위에 참여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야만적인 탄압을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사례를 들었다. : “누군가 제 상처를 보게 된다면,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심각한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Dylan과 Alexandra, 22세 커플은 9차 행동에서 부상을 당했다.>


 Alexandra는 그녀의 친구 Dylan과 함께 날마다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이끌고 있다. 이 커플은 가급적 슈퍼마켓에 가지 않는다. 포장을 하지 않고 대량 구매를 한다. 그리고 과일과 채소를 구매하기 위해 직접 현지 농장에 가기도 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시위를 통해, 국가나 초국적 기업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소비 보이콧을 합니다.”


 Dylan도 이에 동의하며 말한다. :


 “노란 조끼 운동이 거의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세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씨앗을 뿌리기를 바랍니다.”


5.

"평화롭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리는 피격당합니다"


 Mathieu와 Baptiste는 여전히 운동을 지지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시위에 나서지 않는다. 한 사람은 훈련을 위해 호주에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트럭을 운전하는데 묶여있는 처지이다. 이 전직 군인은 얼굴에 곤봉으로 폭행을 당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다. : “저는 군대에 있었어요. 경찰 부대에 바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Mathieu는 더욱 분노에 차있다. :


 “다음 시위에서 저는 온순하게 있지 않을 겁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평화 시위를 하고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피격당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평화 시위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피격당하고 있습니다.”


* 출처 : 

https://www.rue89strasbourg.com/six-mois-apres-blessures-violences-policieres-155944#1

posted by macronde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