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Part2로부터 이어지는 기사)


Jerome RODRIGUES : 39세, 2019년 1월 26일 파리에서 부상당함.


 “저는 ‘상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저는 현 정부에게 ‘프랑스 국민들이 적절한 임금을 받고 존엄하게 살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이해시키려 거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노란 조끼와 같은 운동을 몇 년째 기다려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 무리의 노란 조끼 동지들이 최루탄 가스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동지들! 여기서 얼른 나가세요.” 저는 진압 채비를 하고 있는 경찰 부대를 보았습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야 돼, 저기로 가면 안 돼.” 그런 다음, ‘쾅!’ 하고 수류탄이 제 발에서 폭발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초가 흐른 뒤, 고무탄환이 제 눈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두 명의 삶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제 자신, 그리고 발포했던 경찰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그에게는 부인과 자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며,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의 삶은 파괴될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상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원했던 건 그저 생계를 꾸리는 것, 부유층의 특권을 철폐하는 것,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였습니다. 이제 저는 운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인터뷰어 Sami Acef와 Simon Valmary에 따르면, Jerome Rodrigues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Jerome Rodrigues는 2018년 1월 26일 파리에서 부상을 당했다. AFP는 2019년 2월 6일 그를 인터뷰했다.


Ritchie ALEXIS : 34세, 2018년 11월 19일 Reunion 섬 Saint Paul에서 부상당함.


 “그는 경찰 당국이 실수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변호사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Ritchie Alexis는 Reunion 섬 Saint Paul에서 ‘매우 존경받는’ 주민이다. 그는 시위대를 만나서 “지역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진정하라고 이야기할 것”을 한 친구에게 요청받았다. 그의 변호사 Remy Boniface가 전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변호사 Boniface에 따르면, 그는 아침에 경찰과 청년들 사이의 대치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일부 청년들은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습니다.”라고 Boniface가 말했다. “경찰은 사전 경고도 없이 발포했고, 그가 첫 번째 폭발음을 들었을 때, Ritchie는 ‘그들에게 진정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뒤에 두 번째 발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고무탄환에 눈을 피격 당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그는 매우 속상합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는 경찰도 때로는 실수할 수 있으며, 우발적으로 발포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매우 분노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찰 당국이 실수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변호사가 말했다.


 인터뷰어 Mahdia Benhamla에 따르면, Ritchie Alexis는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34세 Ritchie Alexis는 AFP와 직접 인터뷰하길 원하지 않았다. 위 내용은 사건에 대한 Ritchie Alexis의 증언을 변호사가 전달한 것이다.


J-L : 17세, 2018년 12월 6일 Beziers에서 부상당함.


 “제 아들은 그냥 하교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J가 고등학생과 노란 조끼, 경찰들 사이의 충돌에 휘말렸을 때, 그는 하교하는 중이었다고 아버지가 AFP 인터뷰에서 밝혔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의 아버지 주장에 따르면, J는 어떤 발사체에 왼쪽 눈을 피격 당했고, 그것은 “틀림없이” 고무탄환이라고 했다. “제 아들은 시위대나 노란 조끼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교하는 중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J는 2018년 12월 14일 안면 복원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왼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법원 판결이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그의 아버지는 목격자를 찾기 위해 TV에 출연해 호소했다. 그의 아들이 부상당했을 당시의 상황 설명을 요청했고, 또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인터뷰어 Isabelle Ligner에 따르면, J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Jacky SINEDIA : 58세, 2018년 11월 27일 Reunion 섬 Saint-Louis에서 부상당함.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시야가 온통 까매졌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Reunion 섬 Saint-Louis의 돌봄노동자 Jacky Sinedia는 할머니 댁으로 가는 도중, 고무탄환에 피격을 당했다. 그는 AFP 인터뷰에서 “행진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으며”, 운동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노란 조끼를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최루 가스 탄환과 수류탄이 폭발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58세 Jacky SINEDIA는 장모님 댁을 떠나, 딸과 손자를 만나러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걱정했고,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고 말한다. “제가 왼쪽 눈을 피격 당했을 때, 거리에 겨우 서있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시야가 온통 까매졌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Jacky는 부상당한 이후, 병가를 낸 상황이다. “매일 밤마다, 저는 폭발음과 사람들이 비명 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이게 언제까지 가나 끝까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저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어 Mahdia Benhamla에 따르면, Jacky Sinedia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사는 열리지 않고 있다. 58세 Jacky Sinedia는 2018년 11월 27일 Reunion 섬 Saint-Louis에서 부상을 당했다. AFP는 2019년 3월 14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Olivier FOSTIER : 49세, 2019년 3월 23일 Charleville-Mezieres에서 부상당함.


 “누군가 제 눈을 칼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저는 노란 조끼 운동 이전에는 시위에 전혀 참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군중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크롱에게 그리 거창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일하고, 존엄하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는 혼자 조용히 걷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란 조끼를 입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류탄이 제 앞으로 쏟아졌습니다. 저는 최루 가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리를 피했습니다. 바로 그때, 수류탄 혹은 고무탄환에 피격을 당했습니다. 누군가 제 눈을 칼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습니다. 마침 근처에 교통사고 수습을 나왔던 소방관들이 곧장 달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실명을 당했습니다. 눈 아래쪽 뼈가 부서졌습니다. 결국, 의사는 아마도 일종의 보형물 같은 것을 삽입할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밤에 여러 번 잠에서 깨는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상담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은 제게 이런 종류의 후유증이 향후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직장 문제와 관련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여행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제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운전을 하거나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어 Sami Acef에 따르면 Olivier Fostier는 소송을 제기했다. AFP는 소셜 미디어에서 그의 사연을 접하고, 2019년 4월 1일 Olivier Fostier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금속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극우 애국자 협회의 대표이기도 하다.



Mohammad : 15세, 2019년 1월 12일 중동부 프랑스 Saint-Etienne에서 부상당함.


 “저는 시리아에서 피난을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실명을 당했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Mohammad는 2018년 5월, 레바논 Aleppo를 떠나 프랑스에 도착했던 3명의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레바논 난민촌에서 6년 동안 살았다. Mohammad는 경찰에게 쫓기고 있던 노란 조끼 시위대에 휩쓸리게 되었고, 고무탄에 피격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식료품 쇼핑을 하러 가고 있었지만, 가게는 시위로 인해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루 가스가 자욱했고, 노란 조끼는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경전철 트램 정류장 옆에 있었고 ... 제 앞에 있던 경찰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얼굴에 피격을 당했고,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동안, 경찰관이 다가와서 말을 걸며, 경계를 섰다고 Mohammad가 증언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라고 Mohammad가 말했다. 이어서 그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습니다. ... 그리고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대장장이가 된 그의 아버지는 “Mohammad는 아직 본인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인터뷰어 Denis Meynard와 Fabienne Bruere에 따르면, Mohammad의 가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시리아 난민 소년 15세 Mohammad는 시리아를 탈출해, 그의 가족과 함께 레바논을 거쳐 프랑스에 왔다. 그는 2019년 1월 리옹에서 약 60km 떨어진 Saint-Etienne 노란 조끼 시위에서 오른쪽 눈을 실명 당했다. Mohammad의 부모는 몇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의 부상을 알게 되었다.


(끝)


* 원문 출처 :

https://factcheck.afp.com/life-after-losing-eye-french-protests


* 참고 자료 1 : 


[Part 1] 2019년 4월 18일자 AFP의 부상자 인터뷰 번역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199


[Part 2]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200


* 참고 자료 2 : 이 링크에 가면 경찰 폭력에 의한 부상자에 대한 상황 설명과 사진, 관련 뉴스 기사(해당 사진이나 링크 클릭) 등을 볼 수 있음. 아카이빙 게시물이기 때문에 운동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부상자 상황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음.


https://desarmons.net/index.php/2019/01/04/recensement-provisoire-des-blesses-graves-des-manifestations-du-mois-de-decembre-2018/


http://lemurjaune.fr/


* 참고 자료 3 :


6월 21일 현재, 경찰 폭력에 의한 희생자 현황 통계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195

posted by macronde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