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3월 23일 토요일, 니스에서 내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증언이다. 나는 그곳에서 경찰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멜리사는 거리 의료진들이 쥐느비에브 르게(Geneviève Legay)를 구조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겪은 경찰의 야만성에 대한 괴로운 증언을 한다.



 “나는 18살이다. 그리고 나는 알프마리팀(les Alpes Maritimes) 거리 의료진이다. 나는 3월 23일 토요일, 니스에서 열린 노란 조끼 시위에 갔다. 니스 시장은 알프마리팀주 행정 당국의 승인을 받아, 이 시위에 대해 금지 조치를 취했다. 나는 오전 10시 30분경, 조금 늦게 도착했었다. 거리 의료진 팀 동료들 13명은 이미 현장에 있었고, 경찰들에 의해 포위당해 고착된 상태였다. (고착 상태에서 물 한 병을 위해,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동료들은 밖으로 나오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마실 것을 전달했다. 포위망 밖에는 3명이 있었다. 노란 조끼들은 경찰에게 둘러싸였다. 경찰 기동대가 출동했고, 포위망 밖에 있던 사람들은 해산당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리 의료진들이 시위에 관여했을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어야한다. 우리는 한쪽에서 스스로를 식별할 수 있는 고유한 티셔츠와 고글(보호경), 가스 방지 마스크, 헬멧, 응급 구호 물품 등을 가지고 있었다.


 최루 가스 수류탄 공격이 시작되었고, 73세 여성은 경찰에 의해 바닥에 밀쳐 넘어졌다. 그녀는 머리에서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 팀은 그녀를 돕고자 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우리를 제지했다. 우리 거리 의료진들은 뒤로 물러섰지만, 경찰들은 가스를 발포했다. 심지어 한명은 심하게 밀쳐졌다. 그리고 우리들 중 7명이 체포를 당했다. 가스 공격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그것은 보통 나를 아프게 만들진 않았지만, 나는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팀 동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돌아왔다. 경찰들의 모욕과 폭력은 여전했다. 이른 정오 무렵, 우리는 띠에(Thiers) 역을 떠나 걍베따(Gambetta) 거리로 향했다. 사람들은 비좁은 거리로 밀려났고, 경찰들은 최루 가스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내 장비를 착용했고 다른 의료진들도 더 멀리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나 어느 60대 여성이 호흡 곤란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내 첫 번째 반응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내 장비와 마스크를 벗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최루 가스에 노출되었고, 불쾌감을 느꼈다. 그녀가 만난 이 여성은 심한 스트레스와 쇼크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 순간 나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나는 죽을까봐 두려웠다”


 "우리는 작은 차도에 있었다. 그때 나는 지휘관과 함께 나를 향해 몰려오는 15명의 경찰 부대를 보았다. 그들은 소리쳤다. ‘우리가 체포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여성과 스스로를 플래시 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 그들은 최루 가스, 곤봉, 플래시 볼을 가지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경찰들이 다가올수록, 플래시 볼과 최루 가스가 우리에게 쏟아졌다. 경찰들은 그 여성의 다리에 곤봉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고, 나는 내 다리로 그녀를 보호하려 했다. 그래서 경찰들은 내 다리와 온 몸을 적어도 수십 차례 곤봉으로 폭행했다. 나는 실제로 내가 몇 대를 맞았는지 셀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나는 죽을까봐 두려웠다. 나는 잠시 동안 계속 폭행을 당했고, 매우 나쁜 상태에 빠졌다.


 내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찰들은 나에게 “꾀병부리지 말고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며, 나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 고통으로 인해 눈물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찰 기동대 지휘관은 그 당시에, ‘우리는 이 여자를 들어서 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허리띠에 의료 구호 물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떼어냈다. 경찰에게 폭행당한 다리가 극심하게 고통스러워 구부릴 수도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경찰을 밀치고 도망쳤다. 나는 막다른 골목까지 갔고, 도망치다보니 어느새 트하첼(Trachel) 거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란 조끼들이 와서 나를 구조해주었다. 거리 의료진 동료들 중 한명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빠끄 앙뻬히알 거리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해주었다. 여러 경미한 부상을 포함하여, 누군가는 플래시 볼에 의해 귀가 찢겨나갔고, 누군가는 곤봉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었고, 누군가는 플래시 볼 파편에 부상당했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팀 동료가 나를 차에 태워주었다. 나머지 동료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팀 동료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많은 부상자들을 도처에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이를 거절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티스(Mathis) 거리쯤에서 무서운 장면을 목격했다.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경찰 곤봉에 의해 부상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경찰들은 수많은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우리는 띠에(Thiers) 기차역에 도착했고, 남아있던 거리 의료진과 합류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우바헤(Auvare) 경찰서에 가서, 체포당한 우리의 의료진과 모든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내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빠스뙤흐(Pasteur)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나는 경추부와 무릎 염좌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 따르면, 나는 정말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많은 폭행을 당했다면, 나의 무릎은 골절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주에 두 가지 일정이 있다. 하나는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릎 MRI 정밀검사이다. 또한 의사에 따르면, 5일 간의 ITT(임상시험)를 받아야한다. ITT 기간은 연장될 것이 뻔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는 완전히 평화롭고,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 여성들, 노인들을 폭행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히포크라테스(Hypocrate) 선서를 따르는 사람들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든지, 그것을 위해 모든 대가를 감수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휘관이 그랬던 것처럼, 경찰들이 항상 넘쳐나는 희생자들에 대한 치료를 제지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거리 의료진들은 자발성에 기초를 두고 스스로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희생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거리 의료진의 일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나만의 건강, 나만의 삶을 잠시 뒤로 미루어야 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알프마리팀주 06지구의 거리 의료진 그룹에 후원을 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할 수 있다. 우리는 응급 구호 조치를 위한 필수 의료 장비들을 구입할 것이다."

https://www.lepotcommun.fr/pot/3peqkf7n


* 원문 기사 출처 :

https://www.revolutionpermanente.fr/J-avais-peur-de-mourir-Melissa-18-ans-street-medic-violemment-matraquee-par-des-CRS-a-Nice

posted by macrondemission